내가 일본에 있었을 때의 영상을 봤다면, 비건 훠궈 먹는 걸 봤을 거예요. 봤나요? (네) 그걸 보고 사람들은 내가 세속의 즐거움을 매일 누린다고 여겼죠. 한데 그때 딱 한 번, 그때만 그랬어요. 우리는 그 후 한 달 동안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배부르게 먹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때는 서너 명뿐이었는데 그들이 몰래 뭘 먹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그 근사한 비건 훠궈를 만들었는데도 아무도 많이 먹질 않았어요. 우리가 사흘 간 먹었는데도 다 못 먹었죠! 양이 많지도 않았는데요. 다시 만들 엄두가 안 나요. 하지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남는 음식은 없을 거예요. 그렇죠? (네) 양을 더 줄여야겠어요. (네) 그래야 전부 달려들죠. 주방에 음식을 감춰두고 우선은 조금만 내놓으라고 할까 봐요. 그럼 그 정도밖에 없다고 여기고 다들 달려들겠죠. 이크! 비밀을 말했네요. 효과가 없겠어요.
여러분은 올 때마다 내가 새로운 뭔가를 말해줄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오니 겁이 나요. 한 주 내내 준비를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죠. 좋아요. 오늘은 무겁거나 심각한 얘기는 안 할 테니 즐거운 시간을 가져요. 화창한 날씨도 드물잖아요. 괜찮죠? (네) 명상하고 싶은 사람은 명상하고요… (대명상홀에서요) 대명상홀은 많이 소란하니까 여기서 명상해요. (네) 괜찮아요. (여기도 좋습니다) (네, 여기서 해도 됩니다) (네) (아주 편안합니다) 편안해요? (네) 그래요. 호법들은 밖에서 사람들을 막아요. 우리 뒤로 가지 말고 위로 가라고 해줘요. 그럼 괜찮을 거예요. (네) 이해했나요? (네) 어디서든 명상할 수 있죠. 정말로 그래요. 적응만 하면 돼요. (적응만 하면 된다고요) 정말로 그래요.
어제는 미국의 누구와 통화했는데, 그 사람은… 미국인은 아니고 어디 출신이냐면… 아니, 미국인이에요. 미국인인데 『칠리』 에서 지내곤 했죠. 『칠리』 죠? 아르헨티나 옆 나라요. (칠레요) (칠레요) 『칠레』 아! 『칠리』 인 줄 알았어요. 『칠리』 가 영어로 무슨 뜻인지 아나요? 『고추』 예요. 그래요, 칠레는 형태가 고추 같아요. 아주 길죠. 그렇죠? (네) 폭이 좁고 길죠. (네) 정말 고추처럼 생겼어요. 그래서 칠레인 거예요. 그는 거기 놀러 간 거였죠. 그가 거기에 있을 때 하루는 외출을 했는데… 나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어쩌다가 그와 대화하게 됐죠. 난 어울락(베트남) 난민 문제로 뉴욕의 어떤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도 마침 거기에 있었죠. 그는 훌륭한 입문자예요. 날 무척 잘 따르고요. 그래서 난 좋다고 하고 잠시 그와 얘기를 나눴죠.
칠레에 갔을 때 있었던 일화를 말해주더군요. 한 번은 입문하지 않은 비입문자 친구들과 외출을 했대요. 그는 칠레에 있을 때 거기서 개인적으로 내 책을 인쇄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대요. 혼자 그렇게 한 거죠. 그러다가 어제는 미국에서도 그렇게 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많은 양은 아니었죠. 혼자서 한 거니까요. 한데 어디를 가든 최선을 다해 견본책자를 나눠주고 나에 대해 홍보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칠레에서 많은 사람이 날 기다린대요. 내 책을 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설명을 듣고는 이렇게 물었대요. 『그래서 이 스승님은 어디 계시죠? 언제 오시는 건가요?』 『제 설명을 듣고 나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만날 거예요』 하자 사람들은 이랬죠. 『스승님이 안 오시면 뭔 소용이죠? 당신 말을 듣는 게 뭔 소용인가요? 스승님은 언제 오시나요?』 초조하게 계속 문의했대요. 말 나온 김에 하는 거예요.
그는 계속 견본책자를 나눠줬어요. 하루는, 비입문자 친구 몇몇과 다른 데로 갔대요. 차를 타고 거기로 간 거죠. 차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고 당연히 그들이 직접 운전을 했어요. 그와 다른 친구들까지 셋이 번갈아서요. 네? 아, 그래요. 세 사람이 일행이었어요. 두 사람은 비입문자였고, 그 형제만 입문자였어요. 당연히 그는 차에서도 명상했어요. 한데 교통 사고가 났어요. 사고 5분 전에도 그는 명상하고 있었어요. 눈을 감고 한 동안 명상을 했죠. 그때 그는 내면의 스승을 봤고, 아주 강력하고 강렬한 사랑의 힘을 느꼈다고 했죠. 극도로 감명을 받아 울음이 터졌고 눈물이 흘렀죠. 그는 감정을 주체하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그때 그 두 친구가 그를 봤다면, 키도 몸집도 큰 미국인이 울고 있다고 한심하게 여겼을 거예요! 그가 왜 그러는지 그 친구들은 몰랐으니 그냥 제정신이 아니구나 싶었겠죠. 그래서 그는 거기서 자신을 제어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어요. 눈물을 참으며 크게 울지 않으려고요. 친구들은 그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내면의 스승을 본 걸 친구들이 어찌 알겠어요. 내면의 체험이라 말할 수도 없었고요.
울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그때 차가 대형 버스와 정면 충돌했어요. 오, 그러면서 차는 완전히 부서졌죠. 한데 타고 있던 사람들은 별로 안 다쳤죠. (무사했군요) 경찰 말로는 전원이 사망했어야 했대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한데 그는 너무 멀쩡하게 차에서 나왔어요. 그 차는 당시 고속으로 달리다 큰 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해서 부서졌는데 운전자 역시 괜찮았어요. (샌드위치처럼 된 거네요) 샌드위치 뭐요? (샌드위치 같았다고요) (끼어 버렸다고요) 끼어 버린 거죠. 그래요. 버스는 대형이었고 그들 차는 소형이었으니까요. 그런데도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죠. 그는 전혀 다치지 않았고요. 다른 두 사람은 다쳐서 입원해야 했지만, 그만 유일하게 무사했어요. 다친 데가 전혀 없었고 찰과상 하나 없었대요. 한데 또 말하길 그런 상황 때문에 나가서 견본책자를 더는 나눠줄 수 없었다고 했어요. 그런 뒤 미국으로 돌아왔죠. 그런 게 일종의 마귀의 방해 아니겠어요?
내 말은, 어디서든 명상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도요. 차는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고 비입문자 둘과 차 안에 같이 있었잖아요. 그는 마음이 순수해서 명상할 수 있었고, 내면의 스승이 오는 걸 볼 수 있었죠. 그렇게 강력한 보호력과 사랑의 힘이 자신에게 오는 건 처음이었다고 했죠. 차 사고가 날 줄은 전혀 몰랐죠. 그래서 스승이 특별히 축복을 주시려고 오셨구나 여겼죠. 와! 감동의 눈물을 흘렸죠. 그가 감동에 젖었던 그 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 사고가 났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사고가 난 건 행운이었다고 하더군요.
내 말은, 우린 영원히 함께한단 거죠. 그는 칠레에 있었어요. 여기서 비행기로 30시간 떨어진 곳에요. (네) 대략 그렇죠. 지구 반대편 아주 먼 곳에 있었어요. 난 여기서 먹고 자고 있었고요. 그의 차가 어떤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지도 난 몰랐죠. 칠레는 거쳐간 적이나, 가본 적이 없거든요. 게다가 거기 도로에 대해선 전혀 몰랐어요. 내가 지나가다가 잠깐 들러서 그를 본 게 아니에요. 난 몰랐어요. 그러니 우린 영원히 함께해요. 성심을 다해 스승을 따르면 스승과 연결이 돼요. 육신만이 아니라요. 물론, 스승을 좋아한다면 스승 옆에 있고 싶어하죠. 더 자주 보길 원하고요. 내면에서 보는 걸론 부족해 외면으로도 보고자 하죠. 그럼 그렇게 될 수도 있죠.
어제 그가 이랬어요. 『여기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스승님을 무척 그리워합니다』 난 이랬죠. 『당신들 미국인들은 수가 너무 적어 어울락(베트남)인들과 중국인들에게 완전히 파묻혀 버렸네요』 정말 그래요. 내가 미국에 입문식을 하러 오면, 입문을 받는 미국인들도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단체 명상에 가는 미국인은 계속 줄어들죠. 온통 중국어와 어울락(베트남)어만 들리니까요. 그래서 미국인들은… 뭐라고 하죠? (등한시돼요) 등한시된다고 여기죠. 중국인과 어울락(베트남)인들은 자기네 언어로만 말하고 서로만 어울리죠. 영어를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배우죠. 비건 피자 살 때처럼요. 미국인들과는 대화가 잘 안 돼요. 미국인들이 오면 할 말이 없어요. 나는 중국어로도 말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보기 좋은 그런 중국어 비디오를 틀어서 보며, 파란 눈과 금발을 가진 옆 사람의 기분은 등한시해요. 외국인들을 잘 챙겨주지 않아요. 그래서 미국인 입문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죠. 거리감이 생겨요. 그래도 집에선 수행해요.
미국인 가운데 일부는 중국인이나 어울락 (베트남)인 친구들이 있어서, 법석이는 분위기와 외국인들을 무시하는 그런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요. (무시하는 게 아니고 언어 장벽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감을 느끼지는 않아요. 그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 남자도 친구가 있어요. 여자친구는 아니고 그냥 여성 친구예요. 서로 알던 사이라서 그런 점에 익숙하죠… 그 중국인 여성을 그는 매우 존경해요. 여자친구가 아닌 그 여성 친구를 통해… 그냥 친구 사이인 거예요. (그냥 친구요) 오랜 친구인데 그 여성을 통해 중국 전통과 문화를 어느 정도 알았고 그래서 존중하게 됐죠. 그래서 거부감이 적어요. 그래서 단체 명상에 갈 때마다 중국인이든, 영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어울락(베트남)인이든, 문제없이 바로 잘 어울리죠. 그는 입문식에도 많은 친구를 데려왔어요. 자신의 좋은 친구들을요. 그들은 동양인들을 낯설어하지 않았어요.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면 사실 매우 좋죠. 약간 거리감 느끼는 이들도 있잖아요. 우리가 잘 안 보살피고 돌봐주지 않으면 전부 『시들어버릴』 거예요.
미국인들은 단체 명상에 와서 중국인들이 많은 걸 보죠. 또 중국어 영상을 틀어주고 있고요. 다들 중국어를 하고, 중국 음식을 먹고, 젓가락을 쓰니 미국인들로선 제대로 먹기도 어려워요. 미국인들은 음식을 먹으려고 무척 애썼죠. 한나절 동안 그래도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여러분이 다 먹어버려서요.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죠. 『좋았어! 잘 먹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런 뒤 집에 가죠. (수프는 먹을 수 있죠) 수프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요. 우리 중국인은 뭐든지 빨리 하죠. 음식이 있으면 빠르게 먹어치우는데, 누가 미처 못 먹으면 그건 그 사람 잘못이죠. 늘 그런 식이에요. 어울락(베트남)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어울락(베트남)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단체 명상 때면 대만(포모사) 사람들과 하는 게 똑같아요. 그들은 똑같은 걸 배웠어요 그 모든 피상적인 것들을요. 어떻게 하느냐고요? 내 사진을 놓고 그 앞에 탁자와 의자를 놓아요. 내가 거기 착석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단체 명상 때에는 의자에 사진을 올리고 그 앞에 비건 과자, 비건 사탕이나 과일, 그런 것들을 잔뜩 쌓아놔요. 단체 명상이 끝나면 다들 앞으로 달려가며 이러죠. 『자, 스승님이 축복하셨으니 어서 드세요!』 (아, 잘 아시네요) 사진도 음식을 축복할 수 있군요. 놀랍네요. 그때도 내면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음식을 먹어 보면 맛이 정말 좋다고 해요. 그것도 좋은 체험이죠.
이런 걸 말해주는 이유는, 손님과 아이들이 오는 때도 있어서 소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안 돼요. 어디서나 명상할 수 있죠. 비입문자 둘과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그는 내면의 스승을 봤어요. 그 사람이 우둔하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아니면 마음이 아주 단순해 그렇겠거니 할 텐데, 아뇨. 그는 박사학위가 있어요. (오!) 미국에서 학위를 땄죠. 세계를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미국의 한곳에서만 지내는 게 아니에요. 또 소위 많은 스승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요. 미국에는 스승이 드물어요. 근데 소위 그런 스승들은 모두가 알고 있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스승들과 관련한 번역물과 서적들이 있으니, 미국에서 이런저런 스승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알고 있죠. 중국인들만 잘 모를 때가 있어요. 미국에선 영적 수행에 관한 기사나 자료가 아주 많아요. 무척 풍부하죠. 어디서나 구입 가능하고 다들 알아보고 싶어하죠. 어떤 사람들은 비건이 아니더라도 비건의 이로움은 알아요. 그러니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른 채 쉽게 속아 넘어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그는 많은 사람을 알아요. 깨달은 스승을 이미 많이 알죠. 허나 날 만난 뒤론, 다른 스승을 더는 찾으려고 하지 않았죠.
친구들도 입문식에 다 데려왔고, 칠레에 있는 지인들에 대해선 다시 돌아가서 구해주고 싶다고 했어요. 왜냐고요? 그는 전에 다른 법문으로 수행했기 때문이에요. 누가 스승이었는진 말하지 않더군요. 허나 수행이 특정 등급에 이르자, 이런 강연도 할 수 있었어요. 영감을 주는 말들을 유창하게 할 수 있었죠. 내면으로 영적인 연결이 있는 것처럼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하는 듯했고, 그는 그냥 그 메시지를 전할 뿐이었어요. 그런 능력이 있었는데, 얼마 뒤에 갑자기 그런 영적 능력을 잃었고 연결이 막혔어요. 허나 계속 설법을 했죠. 그가 영적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계속 그를 믿었고, 신뢰했고, 설법을 계속 들었어요. 나중에 그는 생각했죠. 『안돼, 이건 속이는 거야. 영적 능력이 있었지만 이젠 없잖아. 계속할 순 없어』 그래서 관뒀죠. 다신 그럴 엄두가 안 났대요. 옳지 않다고 생각돼서요. 그런 뒤 다른 길을 찾는 영적 수행을 계속했어요. 그러다가 날 만났고요. 그는 전에 사람들을 속인 걸 후회하고 있어요. 속일 의도는 없었죠. 그런 행위가 업을 초래하는지 묻길래, 난 아니라고 했죠. 『그때는 그렇게 알았고 속일 의도는 없었잖아요.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던 순간 멈췄으니, 괜찮아요』 그래서 그는 돌아가 그들을 구하고 옳은 길로 이끌겠다는 서원을 했죠. 전에 하던 건 삿된 길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몰랐던 거죠. 그러니 누구나 희망이 있어요. 어디서 왔는지는 상관없죠.
사진: 『크든 작든, 모두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