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두 다얄 성자는 까비르 성자와 같은 전통에서 나온 위대한 영적 교사입니다. 16세기 사람으로 『다두』는 형제를 의미하고 『다얄』은 『자비로운 자』입니다. 다두는 사원 방문과 순례와 같은 외부 숭배 형태에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자파(신의 이름 암송)에 집중했으며, 또한 원래의 신성한 근원과 내면의 연결을 기억하며 신께 온 마음으로 헌신했습니다.
다두의 신봉자를 다두 학파로 부르는데 그들은 음주를 금하고 채식을 지지합니다. 다두 다얄 성자는 기록을 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5천 편의 시와 구전의 가르침을 제자 라자브가 기록했는데, 힌두어와 라자스탄어가 혼합된 현지의 브라지 바샤어로 지은 다두 아누바브 바니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두: 자비로운 신비주의자』는 카쉬나스 우파디아야 박사가 편집한 다두 다얄의 시집 영어 번역판입니다. 오늘은 이 시집에 실린 깨달음을 주는 몇몇 시들을 보내드립니다.
♧구루가 없는 삶은 낭비다 “만약 끊어진 고리를 이어주고 피안으로 데려갈 완벽한 안내자를 찾지 못하며, 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낭비라네. 신을 버리고 세상의 쾌락을 좇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쓸모없는 조약돌을 줍는 것과 같다네.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피안으로 데려갈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기회를 또 잃는 거라고 다두는 말한다.
이 몸은 뗏목이며 세상은 깊고 가늠할 수 없는 바다, 어떻게 선원 없이 그 바다를 건너 피안에 갈 수 있는가? 다두는 묻는다. 나는 신을 기쁘게 한 적이 없으니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이 헛되도다, 오 다두여! 무슨 낯으로 웃고 떠들겠는가? 귀중한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떠나니 울어야 마땅하다고 다두는 말한다”
주님의 거룩한 발-사람이 세상에 사는 그 목적은 마음속에 있지 않다 “이 말세에 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삶을 살다니, 오 다두여! 네 마음이 즐기는 것을 하며 주의 계명을 어기었으니 사랑하는 이에게 어찌 얼굴을 보일까? 다두는 묻는다. 너는 감각을 즐기고 마음을 원하는 것은 모두 하였으나 너를 창조한 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구나, 오 다두여! 너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인간의 형상을 받았다. 그러나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을 잊고 하나도 이룬 것이 없다고 다두는 말한다.
아, 너는 우주의 주님, 신을 잊었구나! 보나 마나 다이아몬드를 잃고 돌을 줍고, 유리를 금으로 착각하며 망상의 올가미에 걸렸다. 한순간도 진리를 알지 못하며, 헛된 희망을 갖고 독을 감로수인 양 택하였으니 진리가 함께 할 수 없다. 너는 목화꽃을 보고 꿈에 부풀었구나. 그래서 이번 기회를 놓쳤다. 진리의 말씀을 경청하라. 마음이여, 신께 헌신하라. 그러면 저절로 의식이 성장하리라. 지금이라도 너의 일을 하라. 다두는 말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인생은 시들어 간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 신의 왕국 “기름 종자에 기름이 있고, 꽃에 향기가 있고, 나무에 불이 있으며, 거울에 형상이 있듯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주님이 계신다. 최고의 창조주는 우리 각자를 진정한 신전으로 창조한 후 바로 이 신전의 중심에 거하셨다. 신의 모든 창조는 형언할 수 없이 찬란한 많은 세계로 구성되어 우리 안에 들어있다. 살아있는 완전한 스승의 은총과 안내로 이 모두를 자신의 내면에서 볼 수 있고, 어떻게 대우주가 소우주 안에 들어있는지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저를 창조한 분은 어디에 있나요? 제자가 묻는다. 그분을 보여주세요, 스승님.
신은 자기 마음에 있다고 스승이 대답한다. 거기에 집중하라고 다두는 말한다. 주님은 내 안에 있네! 베일을 거두고 주님을 보여주소서. 자아가 지고한 주님과 직접 만나게 하소서. 내면의 호수에 물이 담겨있고 목마른 자는 와서 마신다. 스승을 탓하지 마라. 스승은 집마다 다니며 사람들에게 거저 말해주지 않는다고 다두는 말한다. 육신 안에서 영원하고 홀로 존재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의 정수인 전능한 이가 자신을 드러낸다. 거울에서 얼굴을 보고 물에 얼굴이 비치듯이 자신에게 신을 본다. 신은 만물과 함께한다고 다두는 말한다. 기름 씨앗에 기름이 있고 꽃에 향기가 있듯이 자신 안에 신이 있다. 혈관에 생명이 있고 태양에 빛이 있으며 달에 서늘함이 있듯이 신은 자신 안에 거한다. 우리 마음에 이 신전을 만든 신만이 이 신전에 홀로 거한다.
마음속에는 오직 님뿐이네. 친구가 함께 있으니 그대가 님을 알아보라. 멀리서 보지 말고 그를 네 반향으로 알라, 오 다두여! 신은 모든 존재 안에 있고 모두와 동행하며 가까이 있다. 사향노루에 사향이 있지만 풀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닌다. 신이 자신과 함께 있지만 자신은 신을 모른다. 스승의 거룩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슬프게도 배회한다.
그대가 세상에서 찾는 신은 그대 안에 거한다. 「내 것」 「네 것」이 있다는 베일 때문에 신을 알지 못한다. 그는 모든 존재 안에 거하지만 그를 아는 자는 드물다. 오직 신에게 헌신하는 자가 그를 알게 된다. 그대 안에 있는 주님을 찾아라. 오 친구여, 스승은 인식할 수 없는 분을 보여주었으며 마음을 휘저어 진리의 정수도 찾아주셨다. 불이 나무에 스며들듯이 완전무결한 주님이 마음에 거하신다. 물이 땅에 스며들듯 오 현자여, 진정한 주님도 마음에 스며든다.
거울에 이끼가 끼지 않듯이 내면의 형상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일심으로 응시하면 보이게 된다. 마음을 휘젓는 자는 쉽게 진리의 정수를 찾고,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다두는 말한다. 참 스승은 신과 하나 되고 몸 안의 모든 걸 보여준다. 몸 안에 창조주도 있고 몸 안에 온카르도 있으며, 몸 안에 하늘도 있고 땅도 몸 안에 가까이 있다.
공기와 빛도 몸 안에 있고 물도 몸 안에 담겨있다. 몸 안에 태양과 달도 있으며, 비파가 몸 안에서 연주된다. 몸 안에는 세 분 주신이 있고, 인지할 수 없는 것과 식별할 수 없는 것도 몸 안에 있다. 몸 안에 4개의 베다가 있으며 몸 안에서 지혜를 얻는다. 네 가지 생명이 몸 안에 있으며 네 가지 소리도 몸 안에 있다. 몸 안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몸 안에서 되풀이해 죽는다. 생과 사가 몸 안에 있으며, 몸 안에서 8백 4십만 윤회가 돌고 돈다. 신의 환생이 몸 안에서 일어나며 몸 안에서 계속 되풀이된다.
밤과 낮도 몸 안에 있으며 뜨고 지는 것도 몸 안에서 계속된다. 다두는 진정한 하나임을 드러낸 가장 높은 스승을 찾았다. 온 우주의 집을 몸 안에서 봤다고 다두는 선포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구루에게 헌신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주의 집을 볼 수 없다. 몸은 천상의 중심들의 창고다. 경이로운 연극이 내면에서 계속되고 있다. 아무도 실수하지 말고 지고한 스승과 동행하라고 다두는 말한다.
창조주는 몸 안에 있다. 그 보물을 그대는 모른다. 구루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를 찾아라. 모두 몸 안에서 찾으리라. 그는 몸 안에 거하며 영원을 지배한다. 완전한 스승이 다두에게 그의 본향을 찾게 했다. 몸 안에서 기쁨을 일구고, 몸 안에서 애정이 성장하고, 몸 안에서 사랑의 감로수를 찾는 것이 구루를 참으로 사랑하는 이가 하는 일이라고 다두는 말한다.
행운은 몸 안에 있다. 「나는 내면에 들어가 그것을 보았다」 다두는 말한다. 구루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를 통해 그것을 찾는다 그렇게 성자들이 말한다. 얻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몸, 내면에서 풍적이 울리면 사랑하는 이를 마주할 수 있으며, 진실로 구루를 사랑하는 이가 신과 합류한다고 다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