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는 거예요. 외적인 계율과 외적인 채식주의, 비건주의가 아니라 내적인 헌신, 우리가 믿고 따르는 고귀한 이상에 대한 내적인 헌신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내가 순수한지 선한지 내 자신은 몰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은 알죠. 적어도 나쁜 품성을 권하지는 않아요. 난 좋은 품성만 권하죠. 난 모른다고 해도 사람들이 알아요. 그리고 내 품성에 대해 편안하게 느끼죠. 그것만 해도 좋은 거죠. 그런 식으로 도움을 주니까요. 내가 알 수도 있지만 정말 아는 건 아니에요. 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걸 행하려 할 뿐이죠. 그러니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우리 행동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 말아요.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예요. 사람들이 냄새 맡을 거예요. 그걸 감지하고 그걸 알아보고 느낄 겁니다. 그리고 때론 비전으로 보기도 하겠죠.
오늘 오후에 대만(포모사)의 시자 한 명이 말하길 대만(포모사)에는 다른 법문을 수련하는 수행자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들 중 일부는 영혼, 내면의 지혜가 높이 진보했고요. 하루는 두 사람이 얘길 나눴어요. 우리 시자와 그쪽 수행자요. 그 수행자는 대화 도중에 불평 같은 걸 했어요. 이러면서요 『아, 당신네 단체는 왜 그러죠? 제자들, 많은 남자들이 스승 곁에 붙어있던데 대체 왜 그러죠? 뭔 일 있나요? 무슨 나쁜 일이 벌어지나요?』 우리 시자는 말했죠. 『아니, 그게 아니에요. 내면을 보세요. 그럼 아무 문제없는 걸 알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은 명상하며 내면을 들여다봤어요. 내면으로 살펴봤죠. 그런 뒤 이렇게 말했죠. 『정말 그렇군요. 미안해요, 별 게 없군요.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오직 사랑만 있어요』 그러니 사람들은 알죠. 그래서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는 거예요. 외적인 계율과 외적인 비건주의가 아니죠. 우리가 믿고 따르는 고귀한 이상에 내면으로 전념하고 헌신해야 해요.
난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아주 오만해요. 모든 걸 안다고 여기죠. 계율에 대해 말하고, 참선에 대해 말하고, 불교에 대해 말하고 가톨릭에 대해 말하죠. 신에 대해 말하고 늘 이런저런 말을 해요. 항상 떠들어대죠. 하지만 자신이 말하는 걸 조금도 실천하지 않아요. 항상 말뿐이죠. 여러분도 그런 사람을 종종 보겠죠. 그렇죠? (예) 네, 그럼 피곤해지지 않나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죠. 『빠를수록 좋아, 얼른 도망가야지』 맞아요. 우리가 단체에서 함께 수행해 나갈수록 이런 공허한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되죠. 공허하죠. 그저 말뿐이고 모든 게 빈 껍데기뿐이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피곤하기도 해요. 그런 사람들은 설득하기 무척 어려워요.
그들이 아는 게 많을수록 그들이 모르는 걸 말해주기는 더 어렵죠. 이미 자신이 모든 걸 안다고 여기니까요. 그들은 너무 많이 알죠! 근데 가진 건 없어요. 그들 머리엔 귀중한 걸 받아들일 공간이 없어요. 쓰레기로 가득해서요. 여러분은 이미 알죠. 수행을 많이 할수록 우린 더 게을러져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죠. 아는 사람은 알 거예요. 모른다면 됐어요. 우린 사람들을 붙잡아서 그들을 개종시키거나 그들을 선량한 사람이 되게 하거나 신이 되게 하려는 열의가 없어요. 좀 지나면 없어지죠. 그런 열정은 시간이 가면 사라져요. 그래서 예전의 스승들 대부분은 돌아다니지 않았어요. 누구를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그냥 서서히 사람들이 알고 찾아오죠.
아마 초기에는 아직 열의와 에너지가 있어서 사람들의 초대에 응하고 여기저기에 갔겠죠. 하지만 나중에는 어디를 가서 사람들을 바꾸려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이따금 여러분은 내게 묻죠. 『스승님, 네덜란드에 가시는 건 어때요? 폴란드에는요? 「모모나라」는요? 스승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기다려요』 그런 식으로 묻죠. 하지만 난 이렇게 답해요. 『기다려요, 기다려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는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생각과 달라요. 여러분은 좋은 걸 알게 되어 모두가 그걸 아는 게 좋고 알아야 하고 즉시 알게 될 거라고 여기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에요. 이미 그걸 아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사는 방식을 바꾸지 않아요. 바꾸기 싫어해요. 가령 나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죠. 누가 소개한 것도 아닌데요. 이 지구에서 날 처음으로 본 건데도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를 따라 같은 길을 간다는 건 아녜요. 그들은 계속해서 신통력을 추구하겠죠. 반드시 우리와 같은 길을 가는 건 아니에요. 특히나 신통력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요.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어요. 하나는 책을 통해 지적 지식을 쌓은 경우고 또 하나는 이른바 신통력에 대한 내적 지식이 있는 경우죠.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신의 참된 길을 이해시키기가 정말 정말 힘들어요. 정말 힘들어요.
내가 살면서, 여러분이 살면서 당연히 이런 두 부류를 늘 만났을 겁니다. 그러니 놀랄 것도 없죠. 입이 닳도록 말을 하지만 아무도 안 듣고 아무도 안 따르죠. 우린 여전히 최선을 다해요. 누구든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린 그들을 도우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매일 그럴 순 없죠. 그래서 여러분은 계속 묻죠. 『거기에 가신지 그리 오래 됐는데 왜 강연을 안 하셨어요?』 계속 그렇게 묻죠.
꽃은 다시 피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특히 귀한 꽃은요. 그렇게 매일 할 순 없죠. 다이아몬드도 수천 년이 지나야 밝은 빛이 나는 최상의 품질이 될 수 있어요. 그래야 마침내 우리의 귀한 몸을 치장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되기 전에는 석탄처럼 까만 상태죠. 네, 전혀 다른 거예요. 다이아몬드가 아닌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힘과 신성을 활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그걸 알아보고 세상과 자신에게 최상의 것을 주기 위해선 말이죠.
내가 강연 같은 걸 하고 싶은가 아닌가는 나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죠. 좋은 것이라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건 아니에요. 최근에 아프리카에 어떤 한 사람이, 한 왕자가 있었는데 간절히 입문을 원했어요. 그는 계속 내게 입문을 강요하다시피 했죠. 그런데 입문식 때는 이렇게 누워 잤어요. 다른 사람들은 열망은 크지 않았지만 모두 꼿꼿이 앉아서 조용히 명상했어요. 그러는 내내 가장 열성적이었고 강압적이었던 사람은 소파에 누워 잤어요. 변하려면 시간이 걸려요. 그가 안 좋단 건 아니에요. 아주 좋은 사람이죠. 회복하고 바뀌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러니 알겠죠? 누군가에게 우리의 길을 설득시키는 건 매우 어려워요. 하지만 입문을 시키는 건 그보다 더 어렵고 사람들이 남아서 계속 수행의 길을 가도록 하는 건 그보다 더 어려워요.
남게 하는 거요. 그런 거예요, 알겠죠? 그러니 날 탓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내게 자비심이 없고 사랑이 없다는 말을 하지 말아요. 사람들이 내 자비심을 원치 않고, 내 사랑을 원치 않고, 내 인내심을 원치 않고, 내 최상의 가르침을 원치 않고 내가 주고자 하는 소중한 걸 받으려 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누군지 잘 아는 많은 사람들도 그래요. 내 내면의 영적 힘을 아는 이들도요. 아주 어려워요. 하지만 난 최선을 다하고 있죠. 그게 내키지 않아도요. 그러니 원한다면 여러분이 스승이 되세요. 여러분이 다니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설득하세요. 여러분은 이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됐어요. 이런 걸 알고 좌절감을 안고 떠납니다.
독일에서 다시 봐요. 다음 주에요. 올 시간이 있다면요. 주말이죠, 그렇죠? 좋아요, 좋아요. 사람들 대다수는 올 여력이 되죠? 안되더라도 난 이미 여러분을 여러 번 봤어요. 네 번이죠. 그것으로 한 동안은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요. 또 봅시다. 또 보자는 말이죠? 다시 만나요. 예, 작별 인사가 아니에요. 또 만나요. 신사 숙녀 여러분 비건 과자 때문에 날 보고 싶어하는 거죠. 다시 만나요. 나와 있으면 행복해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예) 나랑 있으면 행복하죠? (예! ) 아주 아주 행복하죠! 여러분은 정말 헌신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