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위대함을 알 때, 온 우주의 광대한 힘과 하나가 됩니다.
칭하이 무상사님은 다재다능하며 완전히 깨달은 스승입니다. 세계적인 인도주의자, 환경운동가, 다재다능한 작가, 예술가, 디자이너, 음악가, 영화감독입니다. 칭하이 무상사님은 온 힘을 다해 모든 존재에게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전하시며, 영적으로 진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무한히 격려합니다. 칭하이 무상사님은 경애하는 석가모니부처님, 주 예수 그리스도, 노자, 선지자 마호메트 (그에게 평화가 있기를), 스리 구루 나낙과 많은 다른 스승처럼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이 모든 위대한 깨달은 스승은 현재 관음법문으로 알려진 바로 그 법문을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칭하이 무상사님은 이 모든 가르침이 유사함을 일깨워 줍니다.
『삶을 다채롭게 하자』는 칭하이 무상사님의 말씀과 영적 가르침 모음집입니다. 구도자들의 질문과 관심사에 대해 칭하이 무상사님은 영적이며 실제적인 통찰력을 전해주셨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은 지적이고 재능 있는 예술가의 삶을 살면서 동시에 지상에 불국토를 만드는 길을 밝혀주십니다. 『배움의 과정에서 만족하고 긍정적이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매 순간을 잘 사용하며, 동시에 영적 수행으로 얻은 아주 생기 있고 활기차고 즐거운 정신을 삶을 다채롭게 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칭하이 무상사님의 책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하자』에서 발췌한 지혜의 가르침을 전하겠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신을 아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
질문: 어떻게 삶의 목적을 알고 확신할 수 있나요?
『우린 세상을 축복하고 자신의 위대함을 알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 위대함을 알면 온 우주의 무한한 힘과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은 이 우주의 무한한 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처럼 수행해서 영적 공덕과 지혜로 세상을 조용히 축복할수록 지구는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목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달리 뭐가 있을까요? 여기 와서 단지 하루 두세 끼를 먹고, 몇 명의 아이를 낳고, 그리고 죽는 건가요? 어쨌든 그건 진정한 목적이 아니죠! 신께서 많은 수고로 우리를 만드셔서 수십 년간 여기서 살게 하다가 때로는 암, 괴로움, 재난, 지진 등으로 비참하게 죽게 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아요. 이치에 맞지 않아요.
그러니 인생의 목적은 신을 아는 것입니다. 신을 아는 것은 자신의 위대함을 알고, 우리가 그 일부인 완전한 우주적 힘을 아는 것입니다. 비록 한 부분이라 말해도 그건 전체입니다. 예를 들어 내 손가락이 잘렸다면 그건 하나의 손가락이죠. 하지만 손가락을 몸에 붙이면 내 몸의 한 부분이 되고, 그 손가락은 내 몸에 속합니다. 비록 내가 손가락이 내 몸의 일부라 말해도 사실 그건 내 몸의 전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적 힘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또한 전체입니다. 만약 다시 연결된다면요. 그 사이의 작은 틈새는 입문할 때 다시 연결됩니다.
우리가 내면으로 향하고 내면과 조율하며 내면과 연결되면 우린 우주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변의 모두 사람을 축복하죠. 손을 올려놓거나 그들에게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요. 우리가 가엾게 여기거나 우리와 혈육인 사람은 구원을 받거나 어떤 형태로든 축복받죠. 그들의 업과 그들에 대한 우리 사랑에 따라서요』
왜 우린 여기에 있을까?
『불경은 우리가 부처이고 불성이 우리 내면에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신께서 이 사원에 거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거기에 신 말고 다른 누가 있을까요? 우리가 사원이고 신만이 사원에 거하시면 우리가 신이 아니라면 누구일까요? 기억 못해도 괜찮지만 우린 여전히 신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신의 신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서 하든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존재의 아버지/어머니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바람과 삶에 대한 선택을 존중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신성한 자신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죠. 다른 존재가 가기로 선택한 길을 알지 못하니까요. 그 사람은 자신의 일을 하며 다른 방식으로 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겉보기에 나쁜 사람이나 아주 비천한 사람 혹은 아주 부도덕한 사람을 선택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신을 알려는 그 사람의 방식이죠. 신과 다른 모습을 택한 그 사람은 언젠가 그것이 자신이 아님을 알 겁니다. 하지만 돌아가서 다시 온전한 존재를 배워야 해요. 만약 우리가 항상 천국에 머물고 언제나 신이라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우린 자신을 낮추고 이 물질 세상으로 내려올 필요가 있고, 그래야 다시 우리의 위대함을 인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우리 선택이고 여기에 온 이유죠.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신을 알기를 원했기 때문이죠. 시간이 됐다고 느낄 때가 다시 자신을 기억하기로 선택할 때입니다. 그때가 영적 친구, 영적 단체 또는 영적 스승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빨리 기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왜냐하면 기억하는 법과 어디를 볼지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기억한 친구들이 우리를 도울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바로 지고의 존재이고 신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몸에 거하는 지고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신은 이 몸에 거하지 않고 신께서 우리 몸이란 집을 주셨지요.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영적인 용어는 절대 정확한 과학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사가 얼마나 많이 신에 대해 말하고, 영적 친구가 우리 내면의 신적 존재에 대해 잘 설명해도 우리는 그걸 듣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 스승, 안내자 혹은 친구가 우리에게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줘야 해요.
가령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두 가지 방법으로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이론적 방법과 실제적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의 직계 제자들도 후에 기적을 행할 수 있고 천국을 볼 수 있고, 창조주의 말씀인 신의 목소리를 듣고, 또한 천상의 빛을 볼 수도 있으며 천상에 올라갈 수 있고, 심지어 천사들과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신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듯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도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죠. 왜냐하면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처럼 위대하니까요. 우리와 예수님 제자는 같습니다. 예수님께선 우리가 모두 신의 자녀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우리가 잊었기에 우리가 준비되면 한두 명의 친구가 일깨워주러 와야 해요. 만약 준비되지 않았으면 누구도 돕기 힘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