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우리가 영적 수행에 결실이 있고 빨리 진보하기를 원한다면 항상 『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언제나 도를 생각하고, 신을 생각하고, 해탈을 생각하고, 부처와 부처님 가르침 승단을 생각하고,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도 안에 있지요.
Q (f): 여러분 안녕하세요. 먼저 여러분의 인내와 사랑, 우리에게 이렇게 배울 기회를 주신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스승님은 우리가 독립하고 시험에 직면하게 단련시키며, 신념과 인내. 용기를 단련하길 원하십니다. 오늘 저는 스승님을 따라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출가자가 되는 것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이렇게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북돋우고, 또한 에고를 없애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왜일까요? 우린 모두 자신이 에고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고 그래서 종종 두려워하죠. 선이나 악, 또는 성공할지 실패할 지로 고민하죠. 득과 실로 고민합니다. 그래서 자유로울 수 없고, 마음의 평화가 없지요. 이 또한 에고 때문입니다. 매일 외부의 영향에 의해 장애가 생기고 우리의 믿음은 칭찬과 비판, 성공과 실패로 흔들립니다. 자유로울 수 없죠.
그래서 저는 스승님을 따른 이래로 항상 스승님을 존경합니다. 스승님은 영적 수행에서 우리에게 최고의 모범이시고 귀감이시며, 최고로 위대한 교관입니다. 스승님의 모든 행동과 말씀, 직접적인 모범이 최고의 가르침이 됩니다. 스승님은 또한 가장 위대한 교육자이십니다. 동시에 스승님은 가장 위대한 교관이시죠. 『조어장부』는 부처님의 명호 중 하나입니다. 스승님은 훈련하고 길들이기 어려운 이 고집 센 중생들인 우리를 훈련하고 통제하며 길들이십니다.
일상에서 우린 스승님의 말씀과 행동이 언제나 완벽한 모범임을 봅니다. 가령, 스승님은 우리와 내면으로 말씀하시든 수천 명 관중에게 공개 강연을 하시든, 늘 아주 침착하고 편안하며 우아하고 고귀하십니다. 스승님의 빼어난 태도는 참으로 매혹적입니다. 또한 스승님의 말씀은 폭넓은 지식과 불가해한 지혜, 토론의 유창함을 드러내십니다. 스승님의 말씀은 진리의 보석이자 감로법어로, 그 전부가 우리 내면의 믿음과 귀중한 힘을 상기시켜 줍니다. 스승님은 우리 교사로서, 교사처럼 우릴 훈련하고 교육하십니다. 그분이 가르치는 방식은 종종 예측할 수 없죠.
우리 모두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가르치십니다. 스승님은 동료 입문자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똑똑하든 어리석든 개의치 않으시죠. 스승님은 가장 큰 자비로 똑같이 가르치시죠. 스승님은 각양각색의 제자를 적합한 방법으로 가르치는데 능통하십니다. 그들의 성향과 필요, 배우고 받을 능력에 대해 잘 아십니다. 그에 따라 스승님은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고 능숙하게 적당한 계획을 이용해 가르치십니다. 그 방식은 유연하고 변화무쌍합니다. 때론 부드럽고 딱딱한 방식을 모두 이용하고, 동시에 너그럽고 엄격하시기도 합니다.
스승님은 가능한 최상의 방법으로 가르치시죠. 동시에 우린 스승님이 제자를 가르치며 쓰는 놀라운 방식에서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령, 스승님은 때로 상냥하고 다정한 말로 우리 마음을 달래고 감동하게 하며,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 온갖 걱정을 잊게 합니다. 간혹 스승님은 다소 엄격한 방식을 쓰시죠. 스승님의 꾸지람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알다시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꾸짖잖아요. 그렇지요? 부모나 선생님으로서 우린 아이들이 너무 느리게 진보하거나 발전하면 걱정하게 되죠. 이따금 가르침을 위해 스승님은 일부러 어쩔 수 없이 혼내며 무형의 업장을 해결하죠. 그러나 동료 입문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스승님의 위대한 사랑과 자비를 받는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절대 비판하지 마세요. 그건 무지를 드러내죠.
스승님은 이 세상을 초월한 스승으로, 가장 귀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교사입니다. 스승님은 진리, 이 가장 심오한 해탈 법문을 전하시며, 우리가 한 생에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도록 도와주십니다. 스승님은 우리가 자신의 불성을 찾고 우리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안내하시죠. 스승님의 은혜는 바다처럼 끝없이 넓고 산처럼 높습니다. 스승님의 은혜는 형언하거나 감사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성심으로 수행해 스승님께 보답할 수 있죠. 엄격한 아버지나 다정한 어머니처럼 스승님은 우릴 가르치고 바로잡고, 사랑의 정의와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죠. 스승님께서 이런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스승님을 만나기 전인 약 9년 전에, 저는 삶의 무상함과 이 세상의 변화무쌍하고 믿을 수 없는 속성을 깊이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저는 깨달은 스승을 찾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온갖 좌절을 겪었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회상하니 감회가 새롭군요. 또한 그토록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우린 스승님의 법문의 귀중함과 진실로 깨달은 스승의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고대에는 깨달은 스승을 찾고 진리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산과 강을 건너고 온갖 난관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진정한 법문을 구하고자 우리의 선사는 밤새 눈 속에서 무릎을 꿇고 한쪽 팔을 잃기도 했죠. 누군가는 이 목표를 위해 목숨까지 바칩니다. 그들의 신실한 갈망과 그들이 겪은 고난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동료 입문자는 정말 복 많은 행운아죠. 우린 스승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산과 강을 건너고 고난과 극도의 위험을 감내한 것은 스승님이셨지요. 길 잃은 한 떼의 양인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요. 스승님은 우릴 구원하기 위해 많은 시련을 겪고, 비난과 중상모략을 감내하셨습니다. 이 모든 고통은 참으로 우리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를 입문시키기 위해 스승님은 여러 생에 걸친 우리 업장과 심지어 친척과 친구들의 업장을 짊어지십니다. 스승님이 이 업장 때문에 견뎌야 하는 극도의 고통은 상상도 못 합니다. 우린 극히 귀중한 이 법문을 찾았습니다. 그것을 소중히 하고 근면하게 수행하지 않는다면, 스승님의 선의와 성심을 낭비함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하죠.
스승님이 말씀하셨지요. 『신실한 제자를 찾기는 쉽지만 참 스승은 찾기 어렵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죠. 죄와 악으로 가득한 이 혼란한 세상에 부처님이 오셔서 중생들을 제도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여긴 마야의 세상이죠. 우리가 영적 수행을 하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그는 우리를 단념시키고 막으며, 많은 고통을 겪고 낙담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스승이, 우리 스승님같이 엄청난 자비심과 사랑을 가진 스승만이 기꺼이 내려와 중생을 구하려고 하시죠. 물론, 여러 무형의 방법을 이용해 중생을 가르치는 보살은 많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이 가장 자비롭고 사랑이 많죠. 스승님은 자신의 명예와 평판, 목숨보다 중생이 먼저입니다. 우린 참으로 감동하며, 세상의 말로 감사를 표할 길이 없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스승님은 위대한 깨달음과 진리를 얻으신 깨달은 스승이십니다. 깨달은 스승으로서 위대한 사랑의 힘을 부여받으셨습니다. 우린 이 사랑의 힘이 매우 귀하고 숭고함을 압니다. 이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하나 되게 하며, 밝게 비춥니다. 이 사랑의 힘은 외로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고통받는 이에게 온기를 주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죠. 물론 스승님은 가장 다정한 분이십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스승님이 이 혼란한 세상에 와서 우리 모두를 위해 그 많은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힘은 영적 수행자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죠. 스승님은 이 사랑의 힘이 진리를 얻으려는 이에게 전제 조건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힘은 우리 내면에서 저절로 발전해야 합니다. 외부에서 얻지 못해요. 물론 이 내적 품성을 계발하기 위해 영적 수행에 의지해야 합니다. 영적 수행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어서, 제가 느낀 바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생각나는 대로 말할 것입니다. 스승님은 영적 수행자는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죠. 겸손한 사람은 늘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선 어떤 것이든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되죠.
Master: 맞아요. 곧 끝나나요? (아직 이야기 중입니다) 서둘러요. 오늘 차를 마시러 왔지 당신 연설을 들으려는 게 아니에요. 서둘러요. 좋아요. 어쨌든, 그래서요…
Q (f): 한 번은 스승님이 죽림에서 말씀하셨죠. 초기 입문자들도 이것을 잊었을 겁니다. 『나는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며,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가 노력한 결과죠』
Master: 거기 위에 앉아요. (스승님을 보면 잊어요) 괜찮아요. 당신은 비건 간식을 먹을 거예요. 모두가 속으론 티 파티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아주 넉넉해요.
Q (f):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매일 먹는 쌀조차도 부지런한 농부가 심고 비료를 주고 물을 줍니다. 비와 태풍에 맞서 아주 열심히 경작하고, 밥을 해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죠. 그러니 우리 밥그릇의 모든 곡식은 힘든 노동의 결과임을 압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물질로 덧없는 것들이지만, 우리는 역시 감사해야 함을 알죠.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심오하고 귀중한 법문은 말할 것도 없죠. 가장 귀중한 법문으로 말할 나위 없지요. 그러므로 우린 훨씬 더 감사해야 합니다. 스승님 은혜는 무한하며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우린 불성의 열매를 더 잘 맺기 위해 근면히 수행할 수 있을 뿐이죠. 이것이 스승님께 보답할 최상의 방법입니다.
스승님은 우리가 영적 수행에 결실이 있고 빨리 진보하기를 원한다면 항상 『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언제나 도를 생각하고, 신을 생각하고, 해탈을 생각하고, 부처와 부처님 가르침 승단을 생각하고,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이 도 안에 있지요. 이 도를 잊는 순간 우린 평범한 사람이 됩니다. 밖으로는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차이가 없지요. 그 차이는 이상에 있어요. 지혜를 찾고 남들을 이롭게 하려는 이상이죠. 우린 이상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며 사회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영적 수행자는 수행하지 않는 이들과 다릅니다.
어째서 관음 수행자에게 무한한 공덕이 있다고 말할까요? 세속의 사람들도 재주가 있고 똑똑하지만, 두뇌의 수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삶을 물질적으로 향상할 수 있을진 몰라도, 영적 수행자들의 무형의 힘은 사회와 우주를 축복하고 세상을 축복하여 세상을 더 평화롭고 밝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힘으로 세상을 축복하지 못했다면 끔찍했을 거예요. 우린 살아남지 못했겠죠. 태양과 달이 어두워지고, 그럼 천지가 어두워지죠. 대단히 괴로웠을 테죠. 이 사랑의 힘이 없다면 사람들은 우울해지고 괴로워할 겁니다. 네, 우린 사람이 사랑의 자양분을 얻지 못하면 난폭해지고 불행해질 수 있다는 걸 알죠. 그럼 외부로 표출하는 행동이 거칠고 바람직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모든 걸 바꿀 수 있죠.
학교에서 학생들의 과거 기록에서, 결손 가정으로 고통받는 많은 학생이 부정적이고 불행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호의적이지 않지만, 다정한 교사로 인해 부드러워질 수 있어요.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 중에 거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남자들이 있는데, 스승님의 사랑으로 결국 아기처럼 울게 됩니다. 팔십 세 할아버지도 그 사랑 안에 녹게 됩니다. 사랑의 힘은 놀랍습니다.
이 사랑의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영적 수행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스승님은 그것이 내적 천국의 빛과 내적 천국의 소리와 불성이 모은 힘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 힘은 사회와 우주를 축복하고 더 커다란 평화와 행복을 줄 수 있죠. 지금 우린 깨달은 스승님 아래 수행하고 있으니, 동료 수행자들이 더 근면히 수행하길 바라요. 우리 행동과 말, 생각을 정화하는 것 외에도 개념을 확실히 하세요. 이렇게 하면 우린 사회를 정화할 수 있죠.
스승님이 말씀하셨죠. 『무형의 칼이 보이는 칼보다 더 무섭다』 무형의 칼은 부정적인 기운과 악업이니까, 사람들이 크게 고통받죠. 영적 수행자들은 갈수록 예민해집니다. 이런 감각이 매우 강해질 텐데요. 자신을 정화한 후, 그것을 더 잘 알게 될 겁니다.
관음 법문을 수행하면서 그것이 아주 귀중함을 알게 되죠. 외부 사람들 또한 영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럼 우리가 참된 스승을 찾았고, 우리가 수행하는 관음 법문이 진실로 최고의 법문이란 것을 어떻게 알까요? 이걸 자세히 말하지요. 아시다시피 모든 영적 수행자는 진정한 가르침을 나눌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중생이 깨닫고 해탈하도록 돕는 일은 우리 의무이자 책임으로, 이는 영적 수행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공덕이 큰 행동이죠. 우린 공덕의 보상을 바라지는 않지만, 가능한 만큼 도와야 합니다. 우리 각자는 진리를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각자가 세상의 등불로, 그에 따라 행동하며 부처님의 원대한 임무를 맡을 수 있습니다. 우린 또한 스승님의 수백억 화신이 되어 봉사할 수 있죠. 우린 스승님의 「천수 천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진리를 널리 펼치고 남들을 이롭게 하며 깨닫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한마디 말도 무척 소중할 겁니다. 음, 제가 어디까지 했죠?
Master: 당신은 우리 법문이 최고임을 어떻게 아는지 말하지 않았어요. (예) 질문해놓고 답을 안 했죠.
Q (f): 먼저 깨달은 스승에 관해 말하겠습니다. 우린 참으로 깨달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관음 법문이 최고의 법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스승님은 도, 즉 큰 깨달음과 큰 지혜를 얻으신 유일한 분입니다. 스승님은 큰 사랑과 큰 지혜, 큰 자비심, 큰 용기, 위대한 신념, 위대한 힘을 지닌 분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도를 이룬 참 스승으로 불가사의한 힘, 즉 시작도 끝도 없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힘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은 무궁무진하고 늘 이용할 수 있는 위대한 우주의 힘이지요. 그래서 우릴 입문시키고 법을 전해주실 수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과 해탈로 이끌어 생사윤회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고 나면 불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 수행에는 팔만사천법문이 있어요. 모두가 자신의 것이 최고의 스승이고 최고라 하는데, 뭐가 뭔지를 어떻게 입증할까요? 스승님은 우리에게 온갖 내적 체험을 주십니다. 때로 우린 내면의 천국의 빛, 여러 경지의 빛을 보고 여러 경지의 내적 천국의 소리를 듣죠. 우리 또한 부처와 보살의 비전을 봅니다. 능엄경과 보리달마 대사의 혈통론, 법화경 즉 묘법연화경, 법화경의 보문품 등에 묘사돼 있듯이요. 우린 많은 불교 경전에 나온 내적 체험을 정말 증명할 수 있죠. 그 경전들이 같은 것을 전하기에, 우린 스승님이 우리에게 전하신 법문이 분명 진리임을 압니다.
우리 제자들이 보고 체험하였듯이, 스승님은 천백억 화신을 나투십니다. 그 화신은 무소부재하며 전능하죠. 그들은 수천 가지 기도에 답하고, 수천 곳에 나타나 고통받는 이를 구하고 도움에 응답하며 중생을 이롭게 합니다.
스승님은 또한 도를 이루신 참으로 깨달은 스승으로, 명성과 이득을 찾지 않죠.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하다는 점이죠. 많은 종교의 스승이 그리하기란 매우 어렵죠. 스승님은 어떤 보시도 안 받고, 사적 명성이나 이득도 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모든 중생을 위해 하십니다. 모든 중생을 위해 스승님은 명성 또는 성공과 실패, 좋고 나쁨, 모습에 개의치 않으시죠. 모든 중생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타심과 무아, 헌신, 희생의 정신이 부처와 보살의 정신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