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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신을 깨달은 자와 메시아』,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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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을 수 있겠죠: 왜 수행해야 하나요? 왜 명상해야 하나요?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많은 고통을 받기 때문이죠. 또한 온 인류가 고통받을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우리 세상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고, 오늘날 더욱 문명화된 것은 많은 사람이 스승들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지구에 올 때는 제자들이 고양되고 지혜를 계발할 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정화되고, 의식이 어느 정도 높아지게 됩니다. 〔…〕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하죠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며, 부처님도 오직 한 분이다』 어떤 면에선 맞지만, 틀렸죠. 아니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너희는 더 잘할 것이다』라 하지 않았겠죠.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길 바라진 않아도 되지만, 깨달음을 얻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존재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법문을 수행하거나 어떤 길을 걷는 목적은 자신을 깨닫고, 신을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의자에 앉으세요.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신께서 우리와 하나 되길 원하신다면 우리 뜻과 상관없으며 거절할 수 없죠. 겁을 주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직접 경험하면서 알게 된 진실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자리는 즐거운 자리가 아니죠. 그러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도 괜찮아요.

왜 예수님 같은 신의 독생자가 고통받고, 십자가를 져야 했을까요? 또는 모든 힘을 가진 부처님 같은 존재가 항상 사람들의 오해와 모욕과 공격 등 모든 걸 견뎌야 했을까요? 부분적으로는 대중의 무지 때문입니다. 또 스승의 몸이 제자들의 업을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있어요. 하지만 스승은 육신을 가져야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을 위해 고통받고 십자가를 지기 위해 지구에 내려와야 했어요; 내가 지금 목에 걸고 있죠. 이것이 우연인지, 경고인지, 인정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매일 그걸 견디죠.

사람들이 신을 깨닫는 힘을 가진 스승에게 올 때, 의심 없이 스승을 숭배하러 옵니다. 그들은 과일과 꽃과 사랑을 가져오죠. 하지만 스승에게 그들의 빚도 놓고 갑니다. 전능한 신의 자비의 바다가 사람들이 가져온 쓰레기를 대부분 씻어낼지라도, 일부 잔여물은 그들이 버린 곳에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스승의 육신은 이 모든 짐을 견뎌야 합니다.

사람들의 끔찍한 처벌을 견딘 스승은 예수님만이 아닙니다. 고대의 많은 성인이나 인도 성인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그들도 비슷한 운명임을 알 것입니다. 일부 스승은 산채로 불에 타거나 뜨거운 태양 아래 달궈진 쇠솥에 앉아야 했죠. 일부 스승은 산채로 껍질을 벗기고 해부하듯이 조각조각 토막 났어요. 이것은 심지어 성지이자, 대부분 사람이 채식하고, 신성하고, 거룩하며, 경전에 대해 알고 있는 인도에서 벌어진 일이죠. 그래서 내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자리가 즐겁지 않다고 말한 겁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체적 고통일 뿐입니다. 스승들은 우리 모르게 조용히 견뎌야 하는 정신적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께서 많은 스승을 택하지 않는 게 다행이죠.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스승이 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물을 수 있겠죠: 왜 수행해야 하나요? 왜 명상해야 하나요?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많은 고통을 받기 때문이죠. 또한 온 인류가 고통받을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우리 세상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고, 오늘날 더욱 문명화된 것은 많은 사람이 스승들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지구에 올 때는 제자들이 고양되고 지혜를 계발할 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정화되고, 의식이 어느 정도 높아지게 됩니다. 이렇듯 많은 스승이 지구에 은총을 베풀었기에 이 세상은 오늘날처럼 더 나은 곳이 되었죠.

그런데도 천상의 의식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어요. 우주의 다른 많은 세계와 같은 의식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다른 세계와 비교하면 영적 의식이 아주 한참 미숙하고 뒤처졌죠. 때때로 우리가 명상 공덕으로 방문할 수 있는 천상 세계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언어로 소통할 필요가 없는 걸 봅니다. 그들은 아직 영적인 배움이 필요할지라도 아주 발전했고, 똑똑하며, 그곳의 스승들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스승과 함께 배우길 원한다면, 스승의 존재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해하는데 충분합니다. 의심도 없고, 질문이나 대답도 없고, 복잡한 생각도 없죠. 스승의 존재만으로도 모든 것이 완전히 명백해집니다. 우리 세상을 보면 아주 많은 강연이 있고, 논쟁을 하고, 사람들이 수많은 소원을 성취하고, 수많은 질문에 답변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께서 이 세상에 많은 스승을 계속 보내십니다. 이 세상에 오는 스승은 누구라도 이곳 사람들의 언어 문제와 뒤떨어진 정신 능력을 견뎌야 합니다.

모든 스승이 이 세상에서 가르치고 싶어 하진 않아요. 오더라도 아주 잠깐입니다. 예수님처럼요. 그는 총명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스승이 이 세상에 올 때, 온 우주가 찬양하고, 응원하고, 칭송합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와야 하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온 우주는 일종의 단체나 형제애처럼 함께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가족 구성원과 같아요. 한 세계나 한 행성의 영적 진보가 쳐진다면, 다른 행성도 어느 정도 고통받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무언가 잘못했을 때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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