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타락한 시대에 나쁜 일에 관여한 자는 어둠의 악마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이생에서 행복과 안녕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들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면 악마가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 진리에 따라 사는 자는 자기 잘못을 불태워 버리기에 많은 질병과 고통을 겪을 순 있지만, 결국에는 훌륭한 경지로 나아가리라. […] 구도자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죄인은 행복과 안녕을 경험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덕과 악행에 과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미덕의 뿌리를 잘라냈기에 […]. 그런 사람은 더 높은 세계에서 환생할 길이 없다.
대승과 소승에 차이가 없다면, 왜 성문(수행자)은 자기 이로움만 얻을 뿐이지만 보살은 다른 사람의 이로움을 원만하게 이룰 수 있는가? […]
정진하는 정도에 차이가 없다면, 같은 길을 가는 데도 어떤 이는 빠르고 어떤 이는 오래 걸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공부하지 않고 어떻게 성찰할 수 있는가? 어떻게 성찰 없이 명상할 수 있는가? […]
신자들 마음에 봄이 오면, 스승의 말씀이 뻐꾸기 소리처럼 법문으로 울려 퍼진다. […]”
만트라를 가진 왕덴 장로를 위한 조언
“스승의 가호가 내 마음에 들어오며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수행하게 하소서.
요즘 대부분 수행자는 말만 많고 실체가 없다. 중요한 사항을 본질적인 방식으로 적용하는 자가 없다면, 끝없이 힘을 주고 전승하고 지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설령 어떤 이로움이 있더라도 그것은 말만을 얻은 것이다.
사람들은 가르침을 구하는 자라는 명성을 간절히 원하지만: 진리를 진심으로 구하는 이가 없다면, 구전 가르침과 영적인 노래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작은 이로움이 있더라도 진짜 쓰임새는 거의 없다.
많은 학자와 싯다[성인]들의 모음집이 오래된 사원 주변을 떠돌며 목적 없이 벽을 떠받친다. 진심으로 수행하려면 생사윤회를 불완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최고의 수행자이다.
싯다[성자]라고 불리는 자들이 생사윤회에 그토록 집착하는데 나머지 수행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도 끓지 못하면서 교리와 중생을 위해 봉사한다고 주장하고 위대하고 고귀한 뜻을 가졌다고 과시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에게 수치심만 가져올 뿐이다. […] 가장 먼저 자신의 해탈을 얻어야 한다. 그런 다음 남들을 위해 일한다고 해야 맞다. 모든 수행자는 이것을 가슴에 새기라.”